Q 그래픽 스튜디오 ‘이해와 오해’를 운영하며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게 되셨나?
L 함께 스튜디오를 하던 선배가 디자인, 나는 일러스트로 나누어 일했는데 사업이라기보다는 소꿉놀이에 가까웠다. 선배와 즐겁게 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서로의 커리어가 발전이 없다는 걸 갑자기! 뒤늦게! 깨닫고 노는 건 이쯤 하고 서로 하려는 것에 집중하자며 스튜디오를 접었다. 일러스트는 단순히 그리길 좋아하다 의뢰를 받으면서 직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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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20년 6월 12일부터 7월 9일 전시공간(서울시 마포구 홍익로 5길 59, 1층)에서 진행한 개인전 《Final Touch》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부적, 제단, 의례 등 전시에 등장한 여러 소재가 특정 종교나 신앙의 상징이라기보다 종교심 혹은 ‘영적 파워’에 가까운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러한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과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궁금하다.
L 아는 분 소개로 제주도에 있는 절에 새해 기도를 갔다. 처음 갔던 이후로 절이 주는 편안함이나 부처님을 뒷배로 둔 것 같은 기분을 좋아하게 되어 해외여행을 가면 근처 사원을 구경하는 게 낙이 되었다. 어렸을 때 불교유치원을 다녀서 절을 하는 방법은 아는데, 불자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성당 가는 것도 좋아하는데, 천주교인도 아니다. 신의 존재는 믿지만, 특정 종교는 믿지 않는 거다. 작년에는 명상을 열심히 했다.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가 제일인 사람이라 지금 순간의 행복과 즐거움을 중시한다. 가끔은 바쁘고 괴로운 상황에 여유를 찾기 위해 굳이 시간을 들여 명상을 하고, 절이나 성당을 가야 한다며 수선을 떨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할 때도 있고, 종교적 장소를 찾는 것만으로 어려움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서 몸에 지닐 수 있는 영적인 액세서리를 사자 싶었다. 의미만으로 충족되는 게 아니라 몸에 걸치는 거니까 패셔너블한 걸 찾게 되었다.
신을 향한 이러한 뒤죽박죽인 태도의 정체가 대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그런데 주위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더 있었다. 또 크리스털 명상이나 음양 무늬 같은 것들이 힙한 문화로 변신 중인 듯한 피드와 아티클이 눈에 들어오고, 패션브랜드에서 명상과 동양 종교를 도입해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도 보였다. 영적인 것에 기대거나 ‘참된 나’를 찾는 개인이 먼저였는지, 트렌드에 반응한 소비자가 먼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같은 행동 양식을 띄는 사람이 몇 더 있는 것 같은데, 나와 그들은 왜 이런 것을 좋아하고 소비자가 되었을지 탐구하고 싶었다.
Q 예로부터 지금까지 존속하는 영적인 상징물들이 더 가볍고 투명한 형태(액세서리 등)로 재배치되는 것은 ‘밀레니얼’이 물질을 체감하는 방식이나 이 시대가 새로 마주하게 된 불안을 다루는 방법과도 연결이 되어있지 않을까.
L 그럴 수도. 밀레니얼 세대는 정보를 쉽고 가볍게 취하고 볼 수 있는데, 정작 자신이 뭘 봐야 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부유하고 있다는 점이 불안을 야기하는 것 같다. 그걸 시각화하면, 투명한 구 안에 갇혀 밖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다 보이는데 자신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는 이미지가 될 거다. 갇힌 곳이 전시된 액세서리라는 점이 삶을 전시하는 세대인 것과도 통하는 지점이 있다.